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자 지구 (문단 편집) ==== 정권 교체의 혼란 ==== 1254년 아이바크는 경쟁자 파리스 앗 딘을 제거하고 술탄에 오르며 [[맘루크 왕조]]를 세웠다. 이에 반발한 바흐리 맘루크들 중 [[바이바르스]]가 이끄는 700인은 가자에 당도하여 유수프에 복속을 청하였다. 그러자 유수프는 직접 남하하고 가자에 환영단을 보내었으나, 바이바르스의 설득에도 이집트에 나서지 않았다. 1257년 아이바크의 암살 시에도 유수프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실망한 바이바르스는 휘하 맘루크들과 다마스쿠스를 떠났고, 예루살렘에 이어 가자를 약탈한 후 카라크의 우마르 휘하로 들어갔다. 그후에도 바이바르스는 가자를 종종 약탈하였고, 분노한 유수프는 1258년 말엽 2,000 기병대를 파견해 바이바르스의 600 기병대를 공격했으나 격퇴되었다.[* 600 중 400은 베두인 부대. 유수프의 군대가 승기를 잡았으나 바이바르스 휘하 70여 정예 병력이 끝까지 버티고 반격해 승리함] 그후 바이바르스는 가자와 나블루스 일대를 장악하였고, 이에 유수프는 1259년 대군을 모아 그를 패배시킨 후 재차 복속시킨다. 하지만 1260년 몽골군이 쳐들어왔을 때에 유수프는 다시 유약한 모습을 보였고, 이에 실망한 나시리야 & 바흐리 맘루크는 바이바르스와 그를 암살하려 하나 실패하자 가자로 향하였다. 그곳에서 그들은 일전에 유수프와 우마르 진영을 차례대로 이탈한 후, 1년째 가자에 머물던 쿠르드계 샤라주리야 맘루크들과 합류하였다. 가자에 모인 맘루크들은 유수프의 동생 앗 자히르 가지를 술탄으로 추대하였다. 한편 알레포 함락 소식을 들은 유수프는 가자에서 맘루크 술탄 [[쿠투즈]]와 합류하자는 아미르들의 조언에 따라 다마스쿠스를 포기하고 남하하였다. 폭풍과 도적단의 습격 등을 겪으며 고난의 행군을 이어간 끝에 유수프는 2월 가자에 당도하였고, 앗 자히르 가지는 사르카드 영지를 대가로 형과 화해하고 복속하였다. 그러나 패잔병들로부터 이미 몽골군 선발대가 나블루스에 남겨둔 수비대를 격파했다는 비보를 접한 유수프는 가자도 버리고 엘 아리쉬로 향하였다. 다만 맘루크들을 완전히 믿지 못한 유수프는 병력과 가족을 이집트로 보내고 자신은 알 카트야에 남았다. 2월 14일,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몽골 사령관 키토부카는 가자로 분견대를 파견하였고 이듬달 자신 역시 남하하였다. 가자로 돌아온 유수프는 다마스쿠스 시타델 병력의 반란을 유도하며 최후의 도박에 나섰지만 곧 다시 의지를 잃었고, 바이바르스는 이집트 측으로 이탈한다. 3-4월 몽골군 분견대가 가자를 약탈하자 유수프는 네게브 사막을 건너 요단강 유역으로 향했다가 키토부카에 항복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